세계적인 골키퍼 순위와 레전드 골키퍼와의 이별

한국에도 예전 신라시대에 축구가 있었다?

중국의 한조시대에도 축구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언제나 여러분께 스포츠계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이야기거리를 전달하기 위해 오늘도 달리고 있는 토토사이트입니다.
오늘은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하는데요. 많은 스포츠 중에서도 유독 그 매니아 층이 두터운 스포츠 축구인데요.
여러분은 축구의 유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아십니까?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도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히 대답하시기 어려울 텐데요.
그럼 저와 함께 축구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래 물건을 발로 차고, 손으로 던지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자 많은 스포츠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어느 한 지역이나 인종에 의하여 축구가 시작되었다.”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고대로부터 신라, 일본, 중국, 그리스, 아시리아, 이집트, 프랑스, 영국 등 세계 각각 곳곳에서
축구의 원형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토토
삼국사기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한국 신라에는 ‘축국’이라는 놀이가 성행하였다 합니다.
김유신, 김춘추가 농주를 갖고 노는 축국을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기도 하지요.
(“축국”은 농주 또는 기구라고도 한다. 털,겨,공기 따위를 넣은 가죽 공을 여럿이 둘러서서 발로 차고 받는 놀이다.)
축국은 둥근 놀이기구, 이를테면 가축의 방광, 혹은 태에 바람을 넣어 차거나 던지는 놀이였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기원전 7~6세기 그리스에서는 ‘하르파스톤’이라는 경기가 성행했고 이가 로마에 전파되어 무사들,
군대 스포츠로 발전하며 새로운 경기로 변형되었던 게 그 유래라 합니다.
그 경기의 형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축구와 굉장히 흡사했는데 각각 자기 진영의 골라인을 지키려는 두 팀 사이에 벌어진 것입니다.
경기장에는 중앙 원도 있었는데, 공을 차거나 던지며 전진해 마지막에는 상대가 지키고 있는 골라인을 넘는 것이 득점을 하는 방법인데요.
득점을 할수 있는 지점에 막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는데요. 현재의 골키퍼에 해당하는 사람이 라인을 넘지 못 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약 300년 전, 중국의 한조시대에도 축구의 일종인 ‘추슈’라는 경기가 있었습니다.
이는 목표 지점을 향해 공을 차고 나가는 놀이였고, 이와 비슷하게 일본에서도 ‘게마리’라는 경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즐기는 축구는 어떨까요? 현재의 축구는 예전과 그 근본은 흡사하지만 여러 면에서 많이 개선되었는데요,
현재는 11명이 한 팀이 되어 발로 공을 차서 몰고 들어가 상대편 골문에 넣음으로써 그 승패가 결정됩니다.
축구는 발을 주로 사용하며 스피드가 존재하고, 각종 기술의 순간적인 변화를 필두로 하는 남성적인 운동의 대표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토토사이트
또, 한 팀이 11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팀의 조직력, 단결력도 필히 요구됩니다.
90~120m의 터치라인, 45~90m의 골라인으로 이루어진 직사각형 경기장 내에서 이루어지고,
경기 시간은 전반전 45분, 후반전 45분으로써 총 90분이고 15분의 하프타임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 축구를 하는데에 있어서는 각각의 선수가 자신의 역할을 몸소 해내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골키퍼에 집중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성공한 골키퍼 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오늘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자랑했던 레전드 골키퍼들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놀이터추천
1. 페트르 체흐

페트르 체흐는 체코 출신의 선수입니다. 그는 21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수문장들과 같이 이름을 나란히 하는데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전설적인 골키퍼이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단일 시즌 역대 최다 무실점 경기(35경기 24 무실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역대 최다 무실점 경기(202 무실점) 등 명실상부 최고의 기록을 남긴 골키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2018-2019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체흐는 체코 자국 리그에서 정말 굉장한 골키퍼였습니다.
2011년 11월경에는 체코의 전설적인 골키퍼 테오도르 라이만이 소유했던 최장기간
무실점 기록인 855분을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기도 하며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비록, 2011-2002시즌 체코 리그의 우승컵을 갱신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활약상은 아직도 많은 축구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안전놀이터추천
2. 고든 뱅크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키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축구황제 ‘펠레’마저 인정한 최고의 실력자였던 뱅크스 선수는 다른 선수들이 기복이 심한 것에 비해 항상 실수 없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쳐
팬들로부터 “뱅크스의 선방은 잉글랜드의 은행만큼이나 안전하다.”라는 비유를 받았을 정도입니다.
그는 ‘컴플리트 골키퍼(완벽한 골키퍼)’로서 1:1 상황에서의 침착한 판단력,
어마어마한 수준의 제공 능력, 반 박자 빠른 반사신경, 정확한 위치선정과 같은 셀 수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신체적 조건마저도 우월해 역동작에 걸렸을 때도 온몸을 날려 맹활약을 하였습니다.

특히, 1970년 FIFA 월드컵,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세이브가 대표적으로서 100% 골이라 확신하였던 펠레의 헤딩 슈팅을 동물적인 감각으로써
펀칭해낸 바 있으며, 이는 아직도 축구 팬들 사이에서 ‘세기의 선방’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뱅크스는 자국 리그의 레스터와 스토크에서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를 누린 바 있는데, 두 팀이 중하위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 점대 방어율을 선보였으며
2차례에 걸쳐 리그컵 우승을 따내기도 했습니다.
1972년, FWA(FWA:축구기자협회) 올해의 선수, 6년 연속 FIFA 올해의 골키퍼 수상을 덤으로 가져가는 등, 자신의 기량을 뽐냈으나,
아쉽게도 1972년 교통사고로 인한 실명을 겪으며 사실상 막이 내려졌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안전놀이터
3. 피터 보네티

다음으로 소개해 드릴 인물은 피터 보네티 입니다. 아마 그에 대해서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많을 텐데요. 첼시FC의 레전드 선수입니다.
그는 최근 78세의 나이로 타계를 하여 많은 축구 팬들과 축구 선수들의 슬픔을 유발하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육체는 떠났지만, 그의 정신과 그에 대한 기록, 그리고 그의 역사는 아직 길이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는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전설적인 인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터 보네티는 특유의 놀라운 반사신경, 그리고 그 우아한 민첩성으로 인해 ‘the cat(고양이)’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지요.
경기마다 보여주는 그의 플레이가 마치 날렵한 고양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보네티는 첼시에서 729경기를 출전해
클럽의 역사에서 두 번째로 많은 출전 횟수를 가진 선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피터 보네티는 1960년 3월, 단 18세의 나이로 첼시에서 성공적으로 데뷔무대를 가졌습니다. 데뷔 후 약 4개월 뒤, 그는 첼시의 FA 유스컵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빛나는 마지막 선방들은 1963년 EFL컵(리그컵)에서 선더랜드에게 중요한 순간 선방으로 팀을 리그컵 우승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1964-65시즌 레스터시티를 상대로 승부차기에서 직감에 의한 선방으로 리그컵 우승을 차지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가 남긴 여러 경기들 중 가장 위대한 순간들 중 하나는 리즈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하여 1970년 FA 결승전에서 승리를 차지했을 때였을 것입니다.
경기 초반에 파울을 당해 절뚝거렸지만, 그는 골키퍼로서 할 수 있는 여러 기량을 보여주며 선방을 기록하였고 레알 마드리드를 넘어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보네티는 1975년 잠시 클럽을 떠나 미국으로 이동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1년 내에 첼시로 돌아왔고 경험이 없던 팀에게 자신이 갖고 있었던 노하우를 알려 주어, 팀의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2년이 지난 뒤, 피터는 그의 기량을 던디 유나이티드에서 뽐내고 은퇴를 결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후로도 골키퍼 코치로써 많은 선수에게 귀감이 되고, 그들의 롤모델이 되는 등, 누군가에게 꿈을 꾸게 하는 존재로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잠시 슬픈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역시 영원이란 없는 것일까요?
최근 전 세계 스포츠 기사의 1면을 차지한 기사, 바로 첼시의 레전드 골키퍼 피터 보네티가 78세 나이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성기 때의 그는 말이 안 되는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합니다.
그는 자신의 기록을 매번 신기록으로 경신하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그 또한 팬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병으로 인해 78세의 나이로 타계를 하였을 때 많은 축구 선수들이 이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며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많은 축구 선수 SNS에서 피터 보네티의 추모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풋볼 협회 회장이자 FIFA 부사장인 그렉 클라크(Greg Clarke)는 피터 보네티가 세상을 떠난 소식에 그 슬픔을 감추지 못했으며,
1966년 이래 월드컵 우승팀의 일원이었던 피터에 대해 그는 “훌륭한 골키퍼였을 뿐 아니라 영국 경기에서 가장 팬층이 두꺼운 선수였다.”라고 전했습니다.

또, 영국에서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선수인 피터 실턴(Peter Shilton) 선수도 보네티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피터 실턴 선수는 “1970년 피터 보네티 선수는 자신의 영웅이었으며, 그를 보고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생각하며 꿈을 꾸었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영원이란 없는 것일까요? 당대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였던 그, 하나의 별이 오늘 이렇게 지는 걸 보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아주 많은 것을 남기고 갔음이 분명합니다.
여러분, 아직 코로나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부디 마스크를 꼭 챙겨 이 유례없는 질환에 맞서는 우리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언제나 또 찾아오겠습니다.